뉴스 전문보기 ---> "이주민 산업안전 위한 응급의료 체계화, 시급한 과제" - 경남매일
산업현장에서 끼이고 떨어지고 깔려 죽는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이 한국인에 비해 최대 3.6배 높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지난 2021년 기준 한해 828명이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는데 이들 중 102명이 외국인 근로자였다. 이처럼 산업재해의 현장에 노출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외국인 산업안전 전문가가 있어 주목된다.
지난 3월 21일 창신대학교 스마트팩토리학부 산업안전전공 라지타 가우셜야(37) 조교수를 만났다. 그는 2008년 유학생으로 한국에 입국해 인제대학교에서 산업안전보건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박사 학위를 2021년 취득했다. 이후 지난해 9월부터 창신대에 산업안전 전공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라지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화재위험성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NO OPEN FIRE'로 번역돼 있는데 외국인근로자 안내 문구에는 '총을 쏘지 말라'는 번역 문구가 인쇄돼 있다"며 "엉터리 번역으로 외국인들이 위험에 노출된다. 다양한 기업체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한국어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이 다쳤을 때 응급의료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도 전했다.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출신 임신부가 응급 출산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해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사례들이 보고 되고 있다. 이는 산업재해 발생 시 이주민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산업현장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다국어로 제공해야 한다. 산업 특화 한국어 교육을 도입해 응급 상황 시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
라지타 교수는 스리랑카 국적으로 올해 중으로 모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한국 정부가 스리랑카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이주민을 단순 노동자로 인식했으나 최근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며 이들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달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 156만 명의 이주배경 외국인이 거주하는데 오는 2040년이 되면 4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총 인구의 8.1%가 되는 것이다.
라지타 교수는 이러한 추세에서 한국사회가 이들 이주배경인구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 묻는다. 그는 "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 등 다문화사회로 전환을 준비하는 조치가 추진되지만 단순히 기관 신설만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어렵다"며 "이주민을 단순히 출입국 관리 대상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국인과 이주민 간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 기업, 시민사회 단체가 협력하는 이민사회 협력 기구를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라지타 씨가 이주민에 대한 인식개선에 대해 "한국사회가 다문화 인구를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동화시키고 억지로 따라오라고 하는 문화가 여전하다"며 "다양성보다는 한국문화에 빠르게 흡수해 획일화시키려는 경향이 크다"고 전했다.
한국 법령에 따르면 유학생 비자에서 F2(거주) 비자를 취득할 때는 1년 기준 1인당 한국 국민총소득(GNI)의 70% 이상(약 3400여만 원), F5(영주권) 비자를 취득할 때는 GNI의 2배(9900여만 원)를 소득으로 증빙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거주 및 영주권 취득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한국사회가 이러한 기준치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라지타 씨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적응하게 된 데는 한국 문화를 빠르게 이해하고 경험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선후배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도 좋은 팁이다. 이를테면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깍듯하게 대하고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것도 요령이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안전 전문가답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주민 전용 응급의료 네트워크를 만들어 산업재해 발생 시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고자 힘쓰고 있다. 창신대 관련 학과에도 외국인 유학생 19명을 유치해 지역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전문직 이주배경 한국인으로 뿌리내렸다.
"문화는 책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체험하면서 배운다. 시행착오를 빨리 겪고 정상궤도에 들어간다. 이주노동자들이 퇴근해도 자기네 나라 동료들과만 어울리는데 한국사람을 만나고 섞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원주민이나 이주민이나 모두에게 좋다"고 강조했다.
라지타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스리랑카 출신 아내와 4개월 된 아이를 키우며 김해시 장유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전문가로 뿌리내린 스리랑카 출신 라지타 교수의 한국 살이가 이주민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출처 : 경남매일(http://www.gnmaeil.com)